여기서부터 본문입니다.

세계문화유산 후지산의 구성 자산 일람

1 후지산・주변 지역(야마나시현/시즈오카현)

富士山域

후지산・주변 지역

후지산이 지닌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신성하고 장엄한 경관을 토대로 ‘신앙의 대상’, ’예술의 원천’이 되어 온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후지산의 가치중 특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표고 약 1,500m 이상을 자산 범위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명한 그림에 그려진 후지산의 등장 범위가 중복적으로 자주 그려지는 부분에 해당하고, 신앙면으로는 신성성(神聖性)의 경계였던 ‘우마가에시 (산길이 험하여 말을 되돌리는 지점)’ 윗 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이 범위 안에는 아사마노 오카미(浅間大神:후지산 신령)가 자리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8합목(8부 능선) 윗 부분과, 1,000엔 지폐에 그려진 모토스코(本栖湖)에서 바라본 후지산 경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1 산정상의 신앙 유적군

山頂の信仰遺跡

산정상의 신앙 유적군

산 정상에는 분화구 벽을 따라 신사 등의 종교 관련 시설이 있습니다. 신앙심을 가지고 겸허한 마음으로 후지산에 오르는 등배가 시작되자, 사원 축조와 불상 봉납 등이 실시되어 산 정상부분에서의 종교 행위가 체계화되었습니다. 산 정상의 ‘고라이코(일출)’ 기원과 ‘오하치메구리(분화구 둘레를 도는 일)’가 지금까지도 많은 등산객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등 후지산 신앙의 핵심이 현재에도 확실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1-2 오미야•무라야마구치(大宮・村山口) 등산로(현재의 후지노미야구치(富士宮口) 등산로)

大宮・村山口登山道

오미야•무라야마구치(大宮・村山口) 등산로(현재의 후지노미야구치(富士宮口) 등산로)

후지산혼구센겐타이샤(富士山本宮浅間大社)를 기점으로 무라야마센겐 신사(村山浅間 神社)를 거쳐 산 정상 남쪽에 이르는 등산로입니다. 12세기 전반~중반에 걸쳐 활동한 마쓰다이쇼닌(末代上人)을 계기로 후지산 등반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일반 인의 후지산 등배도 시작되어16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겐폰차쿠쇼쿠후지만다라즈 (絹本著色富士曼荼羅図)’에 그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자산의 범위는 현재의 후지노미야구치 등산로의 6합목(6부 능선) 이상입니다.

1-3 스야마구치(須山口) 등산로(현재의 고텐바구치(御殿場口) 등산로)

須山口登山道

스야마구치(須山口) 등산로(현재의 고텐바구치(御殿場口) 등산로)

스야마센겐 신사(須山浅間神社)를 기점으로 산 정상 남동부에 이르는 등산로입니다. 그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고문서에서 1486년의 존재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에이 분화(1707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후, 1780년에 등산로 전체가 복구되었습니다. 자산의 범위는 현재의 고텐바구치 등산로의 표고 2,050m 이상과 스야마오타이나이(須山御胎内) 주변(표고 1,435~1,690m)입니다.

1-4 스바시리구치(須走口) 등산로

須走口登山道

스바시리구치(須走口) 등산로

후지센겐 신사(冨士浅間神社)를 기점으로 8합목(8부 능선)에서 요시다구치(吉田口) 등산로와 합류하여 산 정상 동부에 이르는 등산로입니다. 그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등산로에서 1384년의 연호가 적힌 현불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18 세기 후반에는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등 많은 신도가 이용 했습니다. 자산의 범위는 5합목(5부 능선) 이상입니다.

1-5 요시다구치(吉田口) 등산로

吉田口登山道

요시다구치(吉田口) 등산로

기타구치혼구후지센겐 신사(北口本宮冨士浅間神社)를 기점으로 후지산 정상을 목표로 하는 등산로. 14세기 후반에는 참배자를 위한 숙사도 생기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를 수 있도록 편의시설이 갖추어지게 되었습니다.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융성의 기초를 만든 지키교 미로쿠(食行身禄)가 신자의 등산로를 요시다구치로 정한 후, 후지코 신자가 증가한 18세기 후반 이후에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1-6 기타구치혼구후지센겐 신사(北口本宮冨士浅間神社)

北口本宮冨士浅間神社

기타구치혼구후지센겐 신사(北口本宮冨士浅間神社)

아사마노오카미(浅間大神: 후지산 신령)을 모시던 망배소(望拜所)가 기원으로, 1480년 ‘후지산’의 도리이(신사 입구의 기둥문)가 건립되고 16세기 중반에 센겐 신사 (浅間神社)의 신전이 갖추어졌습니다.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와 관계가 깊고, 1730년대에 후지코 지도자인 무라카미 고세이(村上光清)의 기부로 건조물군의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지금과 같은 경내 경관의 기초가 형성 되었습니다.

1-7 사이코

西湖

사이코

후지코(후지산을 신앙하는 신도)들 사이에서는 산기슭의 8개 호수를 돌며 수행하는 방식이 정착되었습니다. 순례지는 시대에 따라 바뀌었으나, 어느 시대에서나 변함없이 수행 장소가 된 곳은 사이코, 쇼지코, 모토스코를 포함한 ‘후지 5호(湖)’였습니다. 또 후지 5호 중에서 모토스코는 매우 빼어난 풍치 경관을 자랑하여 많은 예술 작품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그 중 평생 후지산을 사진에 담아 온 오카다 고요(岡田紅陽)의 ‘호반의 봄’은 5천엔권, 천엔권의 도안으로 채택되었습니다.

1-8 쇼지코

精進湖

쇼지코

후지코(후지산을 신앙하는 신도)들 사이에서는 산기슭의 8개 호수를 돌며 수행하는 방식이 정착되었습니다. 순례지는 시대에 따라 바뀌었으나, 어느 시대에서나 변함없이 수행 장소가 된 곳은 사이코, 쇼지코, 모토스코를 포함한 ‘후지 5호(湖)’였습니다. 또 후지 5호 중에서 모토스코는 매우 빼어난 풍치 경관을 자랑하여 많은 예술 작품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그 중 평생 후지산을 사진에 담아 온 오카다 고요(岡田紅陽)의 ‘호반의 봄’은 5천엔권, 천엔권의 도안으로 채택되었습니다.

1-9 모토스코

本栖湖

모토스코

후지코(후지산을 신앙하는 신도)들 사이에서는 산기슭의 8개 호수를 돌며 수행하는 방식이 정착되었습니다. 순례지는 시대에 따라 바뀌었으나, 어느 시대에서나 변함없이 수행 장소가 된 곳은 사이코, 쇼지코, 모토스코를 포함한 ‘후지 5호(湖)’였습니다. 또 후지 5호 중에서 모토스코는 매우 빼어난 풍치 경관을 자랑하여 많은 예술 작품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그 중 평생 후지산을 사진에 담아 온 오카다 고요(岡田紅陽)의 ‘호반의 봄’은 5천엔권, 천엔권의 도안으로 채택되었습니다. 

2 후지산혼구센겐타이샤(富士山本宮浅間大社)

富士山本宮浅間大社

후지산혼구센겐타이샤(富士山本宮浅間大社)

후지산을 아사마노오카미(浅間大神: 후지산 신령)로서 모신 것이 센겐신사 (浅間神社) 이며, 후지산혼구센겐타이샤는 그 총본산입니다. 사전(社伝)에 따르면 야마미야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져 왔다고 합니다. 9세기경부터 신앙을 모았으며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보호를 받아 현재의 신전이 축조되었습니다. 또한, 이에야스의 기부를 계기로 후지산 8합목(8부 능선) 이상을 신체(神体)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경내에는 후지산의 복류수가 솟아나는 ‘와쿠타마이케’가 있는데, 예전에는 신자가 등산 전에 이곳에서 목욕재계했습니다.

3 야마미야센겐 신사(山宮浅間神社)

山宮浅間神社

야마미야센겐 신사(山宮浅間神社)

후지산혼구센겐타이샤(富士山本宮浅間大社)의 사전(社伝)에 의하면, 후지산혼구센겐 타이샤의 전신으로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일본 신)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본전에 해당하는 장소에 건물이 없는 점과 후지산을 바라보는 독특한 망배소(望拜所)의 존재를 통해, 분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산을 망배하던 고대 후지산 제사의 형태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4 무라야먀센겐 신사(村山浅間神社)

村山浅間神社

무라야먀센겐 신사(村山浅間神社)

12세기 무렵 후지산 분화가 진정되자 마쓰다이쇼닌(末代上人) 등의 산중 수행자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14세기 초에는 후지산에 슈겐도(修験道:산악 신앙에 불교와 도교를 혼합한 종교)가 성립합니다. 중심이 된 것이 ‘무라야먀센겐 신사(고호지 (興法寺)라고도 불림)입니다. 19세기 후반까지 이곳의 수행자들이 오미야·무라야마구치 등산로를 관리했습니다.

5 스야마센겐 신사(須山浅間神社)

須山浅間神社

스야마센겐 신사(須山浅間神社)

스야마구치 등산로의 기점이 된 것이 ‘스야마센겐 신사’입니다. 사전(社伝)에 의하면,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일본 신)가 창건했다고 하며 1524년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무나후다(공사기록을 적은 패)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707년 호에이 분화로 등산로와 신전이 큰 피해를 입었고 현재의 본전은 1823년에 재건되었습니다.

6 후지센겐 신사(冨士浅間神社, 스바시리센겐 신사(須走浅間神社))

冨士浅間神社(須走浅間神社)

후지센겐 신사(冨士浅間神社, 스바시리센겐 신사(須走浅間神社))

스바시리구치 등산로의 기점이 되는 신사.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들이 자주 들러, 등배 횟수 33회를 하나의 구분으로 하는 기념비가 70개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사전(社伝)에 의하면 807년에 축조했다고 전해집니다. 호에이 분화(1707년)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1718년에 재건되어 수리를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7 가와구치아사마 신사(河口浅間神社)

河口浅間神社

가와구치아사마 신사(河口浅間神社)

9세기 후반에 발생한 분화를 계기로 북쪽 기슭에 처음으로 건립되었다고 하는 센겐 신사(浅間神社)입니다. 센겐신사를 중심으로한 가와구치는 후지 등배(登拝: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가 대중화된 중세 후반~에도시대까지 신자들의 취락으로 발전했습니다. 현재도 후지산과 밀접하게 관련된 종교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8 후지오무로센겐 신사(冨士御室浅間神社)

冨士御室浅間神社

후지오무로센겐 신사(冨士御室浅間神社)

9세기 초 요시다구치 등산로 2합목(2부 능선)에 처음으로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후지산 최초의 신사라고 하는 문헌도 있습니다. 본전은 1970년대에 사토미야(산기슭의 신전)로 이전되었습니다. 수행과 등배(登拝: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 등 다양한 후지산 신앙의 거점인 2합목의 ‘모토미야(신사의 본전)’와 토지의 수호신인 ‘사토미야’가 일체화된 신사입니다.

9.10 오시(御師:신직(神職)) 주택(구 도가와 주택(旧外川家住宅)・오사노 주택(小佐野家住宅))

御師住宅

오시(御師:신직(神職)) 주택(구 도가와 주택(旧外川家住宅)・오사노 주택(小佐野家住宅))

오시는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가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할 때 숙소와 식사 등을 제공하고, 평소에는 후지산 신앙의 포교 활동과 기도를 업으로 했습니다. 오시 저택의 대부분은 직사각형으로 큰길 쪽에 입구를 마련하고 부지를 흐르는 수로 안쪽에 주택 겸 숙사 건물이 지어져 있습니다. 사진은 ‘구 도가와 주택’입니다
*10 오사노 주택은 비공개(후지요시다시 역사민속박물관에 있는 모조 복원 주택을 보실 수는 있습니다)

(주택(구 도가와 주택(旧外川家住宅))

11 야마나카코

山中湖

야마나카코

두 호수는 후지산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언지호(堰止湖)로 5개 호수로 이루어진 ‘후지 5호’에 포함됩니다. 16세기 후반에 하세가와 가쿠교(長谷川角行)가 작성한 문서에는 가쿠교 자신이 수행한 호수로 야마나카코, 가와구치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1733년의 ‘31일 편(三十一日の御巻)’에서는 지키교 미로쿠(食行身禄)가 순례지로 8개 호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 8개 호수 중에서도 야마나카코, 가와구치코를 포함한 ‘후지 5호’는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는 수행의 장이자 순례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12 가와구치코

河口湖

가와구치코

두 호수는 후지산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언지호(堰止湖)로 5개 호수로 이루어진 ‘후지 5호’에 포함됩니다. 16세기 후반에 하세가와 가쿠교(長谷川角行)가 작성한 문서에는 가쿠교 자신이 수행한 호수로 야마나카코, 가와구치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1733년의 ‘31일 편(三十一日の御巻)’에서는 지키교 미로쿠(食行身禄)가 순례지로 8개 호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 8개 호수 중에서도 야마나카코, 가와구치코를 포함한 ‘후지 5호’는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는 수행의 장이자 순례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13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데구치이케(出口池))

忍野八海(出口池)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데구치이케(出口池))

후지산 복류수에 의한 8개 용수지입니다. 후지산 신앙과 관련된 순례지로서 핫카이(八海) 각각 ‘8대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하는 신자들은 이 물로 부정을 씻었습니다. 하세가와 가쿠교의 후지핫카이 수행을 본떠 ‘후지산네모토핫코(富士山根元八湖)’라고 불린 고적(古跡)의 영지로 전해지며, 1843년에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14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오카마이케(お釜池))

忍野八海(お釜池)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오카마이케(お釜池))

후지산 복류수에 의한 8개 용수지입니다. 후지산 신앙과 관련된 순례지로서 핫카이(八海) 각각 ‘8대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하는 신자들은 이 물로 부정을 씻었습니다. 하세가와 가쿠교의 후지핫카이 수행을 본떠 ‘후지산네모토핫코(富士山根元八湖)’라고 불린 고적(古跡)의 영지로 전해지며, 1843년에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15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소코나시이케(底抜池))

忍野八海(底抜池)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소코나시이케(底抜池))

후지산 복류수에 의한 8개 용수지입니다. 후지산 신앙과 관련된 순례지로서 핫카이(八海) 각각 ‘8대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하는 신자들은 이 물로 부정을 씻었습니다. 하세가와 가쿠교의 후지핫카이 수행을 본떠 ‘후지산네모토핫코(富士山根元八湖)’라고 불린 고적(古跡)의 영지로 전해지며, 1843년에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16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조시이케(銚子池))

忍野八海(底抜池)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조시이케(銚子池))

후지산 복류수에 의한 8개 용수지입니다. 후지산 신앙과 관련된 순례지로서 핫카이(八海) 각각 ‘8대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하는 신자들은 이 물로 부정을 씻었습니다. 하세가와 가쿠교의 후지핫카이 수행을 본떠 ‘후지산네모토핫코(富士山根元八湖)’라고 불린 고적(古跡)의 영지로 전해지며, 1843년에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17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와쿠이케(湧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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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와쿠이케(湧池))

후지산 복류수에 의한 8개 용수지입니다. 후지산 신앙과 관련된 순례지로서 핫카이(八海) 각각 ‘8대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하는 신자들은 이 물로 부정을 씻었습니다. 하세가와 가쿠교의 후지핫카이 수행을 본떠 ‘후지산네모토핫코(富士山根元八湖)’라고 불린 고적(古跡)의 영지로 전해지며, 1843년에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18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니고리이케(濁池))

忍野八海(濁池)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니고리이케(濁池))

후지산 복류수에 의한 8개 용수지입니다. 후지산 신앙과 관련된 순례지로서 핫카이(八海) 각각 ‘8대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하는 신자들은 이 물로 부정을 씻었습니다. 하세가와 가쿠교의 후지핫카이 수행을 본떠 ‘후지산네모토핫코(富士山根元八湖)’라고 불린 고적(古跡)의 영지로 전해지며, 1843년에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19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가가미이케(鏡池))

忍野八海(鏡池)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가가미이케(鏡池))

후지산 복류수에 의한 8개 용수지입니다. 후지산 신앙과 관련된 순례지로서 핫카이(八海) 각각 ‘8대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하는 신자들은 이 물로 부정을 씻었습니다. 하세가와 가쿠교의 후지핫카이 수행을 본떠 ‘후지산네모토핫코(富士山根元八湖)’라고 불린 고적(古跡)의 영지로 전해지며, 1843년에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20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쇼부이케(菖蒲池))

忍野八海(菖蒲池)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쇼부이케(菖蒲池))

후지산 복류수에 의한 8개 용수지입니다. 후지산 신앙과 관련된 순례지로서 핫카이(八海) 각각 ‘8대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등배(登拝: 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하는 신자들은 이 물로 부정을 씻었습니다. 하세가와 가쿠교의 후지핫카이 수행을 본떠 ‘후지산네모토핫코(富士山根元八湖)’라고 불린 고적(古跡)의 영지로 전해지며, 1843년에 후지코(富士講: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21 후나쓰타이나이주케이(船津胎内樹型)

船津胎内樹型

후나쓰타이나이주케이(船津胎内樹型)

1617년 하세가와 가쿠교가 후지산을 등배(登拝: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했을 때, 북쪽 기슭 동굴(후나쓰타이나이주케이 지정범위 내에 분포하는 소규모 용암수형의 하나로 추측)을 발견하고 아사마노오카미(浅間大神:후지산 신령)를 모셨습니다. 1673년에 후지코(富士講: 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가 현재의 후나쓰타이나이주케이를 발견했으며, 1892년에 새로운 ‘오타이나이’ 로서 요시다타이나이주케이가 정비되었습니다. 동굴 안에는 고노하나사쿠야히메노 미코토가 모셔져 있습니다.

22 요시다타이나이주케이

吉田胎内樹型

요시다타이나이주케이

1617년 하세가와 가쿠교가 후지산을 등배(登拝:신앙심을 갖고 겸허한 마음으로 오르는 일)했을 때, 북쪽 기슭 동굴(후나쓰타이나이주케이 지정범위 내에 분포하는 소규모 용암수형의 하나로 추측)을 발견하고 아사마노오카미(浅間大神:후지산 신령)를 모셨습니다. 1673년에 후지코(富士講: 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 신자가 현재의 후나쓰타이나이주케이를 발견했으며, 1892년에 새로운 ‘오타이나이’ 로서 요시다타이나이주케이가 정비되었습니다. 동굴 안에는 고노하나사쿠야히메노 미코토가 모셔져 있습니다.
*22 The inside of the main cave of Yoshida lava tree molds is not open to the public.

23 히토아나후지코 유적(人穴富士講遺跡)

人穴富士講遺跡

히토아나후지코 유적(人穴富士講遺跡)

히토아나는 ‘센겐(浅間) 대보살(후지산의 신)의 거처’로 전해진 풍혈(용암 동굴)로, 후지코의 시초로 여겨지는 하세가와 가쿠교가 16~17세기에 수행・입정했다고 전해지는 성지입니다. 경내에는 신자들이 건립한 가쿠교와 선배들의 공양비, 현창비, 등배 기념비가 약 230개 남아 있습니다.

24 시라이토노타키(白糸ノ滝)

白糸ノ滝

시라이토노타키(白糸ノ滝)

후지산의 용수가 약 200m에 걸쳐 분출하는 시라이토노타키는, 16~17세기에 후지코(富士講: 하세가와 가쿠교의 계보를 잇는 종교집단)의 시조인 하세가와 가쿠교가 수행한 곳으로 여겨져 후지코 등의 순례·수행 장소가 되었습니다.

25 미호노마쓰바라(三保松原)

三保松原

미호노마쓰바라(三保松原)

미호노마쓰바라는 <만요슈(万葉集)> 이후 많은 와카(和歌: 일본 전통 정형시)의 소재가 되어 요쿄쿠(謡曲) <하고로모(羽衣)>의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15~16 세기 이후에는 미호노마쓰바라를 전면에 배치한 구도가 후지산 그림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회화 등 많은 예술 작품을 통해 미호노마쓰바라는 후지산을 바라보는 명승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페이지의 정보는 「후지산 세계문화유산 팸플릿(후지산 세계문화유산 협회 발행)」으로부터 제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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